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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의 방해물 (엡5:1-14)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닮아가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사회적인 가치나 분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의 사회는 대제국을 형성하고 향락과 탐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로마가 점령한 모든 속주국가에서도 편만해 있었던 상황입니다. 에베소(Ephesus)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로마 시대에 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하여 부유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는 무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로 동서양 문화의 교류지역이었고, 구라파에서 올 때 아시아의 관문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입장에서 에베소는 모든 화물유통의 요충지가 되어 고대 세계의 ‘허영의 시장’이라고 불려 질만큼 사치와 향락을 위한 물건들이 거래되었습니다.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아데미 신전으로 유명합니다(참조, 행 19:24). 에베소에 있는 고대근동 풍요의 여신 아데미(Artemis) 신전은 5만 명을 수용할 만큼 규모가 큰 신전이었고 파르테논 신전의 4배 크기로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습니다. 에베소는 고대근동 풍요의 여신 아데미(Artemis, Diana) 숭배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었고(행19:23-41), 결국, 에베소 사람들은 그 지역에 융성하던 아데미 여신 숭배에 즐겨 참여하면서 음란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았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에베소교회를 감찰하시는 성령님의 지적이 나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 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책망은 성숙한 에베소교회가 가진 치명적 단점이었습니다. 그들도 처음엔 열정적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섬겼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 사랑과 신앙의 열정이 식어져갔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식어진 사랑과 신앙의 결과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구원의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엡 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엡 5: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막연하게 아직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관이 우리의 영성을 더욱 파괴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을 향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으신 예수님의 고귀한 헌신으로 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엡5: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날마다 검증하고 실천하는 자로(엡5:10), 살아갈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영적 성장을 위해 방해가 되는 가이드라인을 에베소 교우들을 위해 제시합니다.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음행과 탐욕 그리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하는 말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성을 파괴하고 영적 능력을 다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름조차 부르지 말아야 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이며 책망 받아야 할 일들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영적 성장은 쉬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보입니다. 차라리 우리 자신의 능력이 죄와 유혹 앞에 철저히 무기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 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둠의 일들은 책망을 통해 빛으로 드러나게 하십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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