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고전2:10-19)

지난 시간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전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전도의 과정에는 우리의 능력을 뛰어 넘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비대면 시대에 과연 사람을 변화시키는 전도는 가능할까?’ 하는 고민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성령님의 역사는 쉬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전도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성령은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몇 가지 요소들 가운데 가정 중요한 것은 이성과 감정입니다. 이성은 합리성을 강조합니다. 이성적일수록 합리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적 사고에 집착하게 되면 이성을 뛰어넘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미스테리’로 치부하거나 더 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영의 세계에 대해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의 세계조차도 이성적으로 관찰하여 이해하려는 습성을 지니게 됩니다.

사도행전 26장에는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이 회심하게 된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과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자신의 동포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렇게 로마의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아그립바왕의 대답은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행26: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행26: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행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행26:24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하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바울을 미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에 너무 사로잡혀 행동하는 사람들은 합리성이 전혀 없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수 없게 만듭니다. 감정에 충실하여 살게 되면 가치관의 일관성을 잃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깨닫게 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오직 성령님만 이 일을 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2.성령은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하십니다.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은 영적인 일들에 대한 이해력과 분별력을 갖게 하십니다. ‘분별하다’의 헬라어 의미는 ‘꼭 맞도록 함께 연결하다, 결합하여 하나로 하다, 해석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영적인 것들을 적당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역과 영의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하시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행동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반면에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어리석게 보이고 이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냉소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전도를 하면서 보면 전도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대했던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일찍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하는 사람들을 무관심하게 침묵하며 관찰하던 사람들 가운데는 결국 교회에 나가는 일에 대해 오랜 기간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오히려 감정적인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성령님의 역사에 그 만큼 열려있지만, 이성적인 사람들은 이성을 포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처럼 이성 보다 더욱 강력한 영적 체험만이 이런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성이 곧 그들에겐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특히 죄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혹,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술이나 마약에 의지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인정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성경은 말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성경은 성령을 ‘예수님의 영’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구원을 사역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겸손과 헌신의 마음에 품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대합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서 겸손합니다. 먼저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영적인 통찰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성이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더 용납하고 긍휼을 베풀며 삽니다.

오늘도 성령의 역사를 인지하시고 그 분을 의지하며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시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그 분과 많은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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